"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소외된 농촌 사람들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시들을 소개한다.
급속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 자리한 고단한 삶을 조명하며,
노동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처절한 현실을 되새기고자 한다."
신경림 – 시집 《농무》 1973년
신경림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인으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소외되어 가는 농촌과 민중의 삶을 사실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전통 민요의 리듬과 민중적 언어를 바탕으로, 해체되어 가는 공동체의 정서를 깊이 있게 포착했다. 그의 시는 격렬한 비판보다는 담담한 목소리로, 사회 변화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연대의 가치를 성찰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농무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춤꾼들이 들어간다 무대 밑으로 한사코 춤추는 사람들 추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춤을 추며 감발 싸매고 모개를 동여매고 비틀거리며 무대 밑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술에 취한 듯 취하지 않은 듯 날이 저문 거리로 비틀거리며 돌아가는 사람들 그 뒤를 따라 나도 취한 듯 취하지 않은 듯 비틀거리며 간다 그들이 사라진 거리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길바닥에 꿇어앉아 엎드려 울고 있는 내가 나를 부른다
박노해 – 시집 《노동의 새벽》 1984년
박노해는 1980년대 군부 독재와 자본주의 체제 아래 억압받는 노동자 계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인이다. 1984년, 27세에 발표한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로 지정되었음에도 100만 부 이상 발간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그의 시는 투쟁과 저항의 언어로 시대의 진실을 전달하며, 이후 평화·인권 활동가로도 활약했다
- 노동의 새벽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담배연기 자욱한 창문을 열면 먼동 속에 출근버스 먼동 속에 학교 가는 아이들 먼동 속에 또 하루가 온다 살아 있다는 것이 죽지 않고 견딘다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린 이 거리 이 도시의 새벽을 난 몇 번이고 보아왔다 나는 알아버렸다 그 새벽이 우리들의 피눈물이라는 것을 발바닥에 맺힌 땀방울이라는 것을
백무산 –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1998년
백무산은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인으로, 노동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현실을 바탕으로 산업화 속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탄광과 공장에서의 경험은 그의 시에 뿌리 깊은 사실성과 저항성을 부여했고, ‘노동자 시인’으로 불리며 민중문학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았다. 그의 시는 단순한 고발을 넘어서,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호소하는 울림을 지닌다.
- 경찰은 공장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 -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노동은 인질로 잡혀갔다 납치범들은 총칼로 인질을 위협하며 우리의 입을 틀어막고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귀를 막아버렸다 우리가 입을 열면 총칼은 인질을 해쳤고 우리가 눈을 뜨면 인질은 다치고 우리가 귀를 열면 인질은 고통을 당했다 우리는 침묵해야 했다 우리는 두 눈을 감아야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듣지 말아야 했다 우리의 노동이 살아 돌아오기 위해 우리의 월급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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