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과 유신체제 아래에서
억압과 검열에 맞서 진실을 노래한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군부독재의 폭력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저항의 언어를 통해
시대의 어둠과 맞섰던 시의 힘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신동엽 – 시집 《52인의 시집》 1967년
신동엽은 196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민중의 현실을 시로 드러낸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다. 시집 《52인의 시집》을 통해 당대의 억압과 기만을 거침없이 고발하며, 시대의 양심으로 불렸다. 그의 시는 민중에 대한 깊은 애정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시인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끝까지 지켜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김수영 – 시집 《한국현대시문학대계 24》 1981년
김수영은 1960년대 군사정권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자유와 저항의 가치를 시로 외친 대표적인 참여 시인이다. 대표작 〈풀〉을 통해 억압에 굴하지 않는 민중의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시인은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말하는 문학의 역할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그의 시는 격렬한 언어 속에 시대의 고통과 개인의 의지를 함께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풀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황지우 –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3년
황지우는 1980년대 군사정권의 억압적 현실을 실험적 형식과 강한 풍자로 드러낸 참여 시인이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통해 권위와 허위를 해체하며, 억눌린 시대의 불안과 저항의식을 독창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그의 시는 당대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며, 시적 형식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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